728x90 분류 전체보기46 유리왕 둘째 아들 해명과 두번째 도읍 국내성 유리왕은 3년 10월 졸본에서 국내성의 위나암으로 고구려의 도읍을 옮겼습니다.해명유리왕의 둘째 아들로 16세의 나이로 태자에 책봉되었습니다. 유리왕은 둘째 아들 해명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자신은 위나암에 궁궐을 짓고 편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1년 동안의 준비였습니다. 유리왕이 도읍지에 쌓은 성은 국내성이었습니다. 국내성 옆으로 흐르는 통구하가 압록강으로 흘러 산골인 졸본보다 교통이 편리하고 땅도 훨씬 넓었습니다. 유리왕은 국내성에는 왕을 거스르는 자가 없어 좋다고 말하며 사냥을 하며 나랏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신하들은 도읍을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랏일을 더욱 힘써 돌보고 백성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냥이나 하고 다닐 때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쓴소리를 한 신하는 주몽(동명왕)과.. 2024. 11. 17. 고구려 2대 왕 유리 유리왕주몽(동명왕)이 40세의 나이로 죽자, 유리는 궁중에서 고독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부여에서 살다 고구려로 왔기 때문에 유리를 따르는 세력도 없었습니다. 백성들과 신하들은 부여에서 온 유리가 그들을 쫓아내지 않을지 걱정하며 유리를 잘 따르지 않았습니다. 유리는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를지 고민하며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힘 있는 가문과 결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고구려가 건국되기 전의 비류국을 다스리던 송양의 딸과 결혼을 하면 큰 힘이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리는 고구려를 세우는데 공을 세운 힘 있는 신하들의 딸과도 결혼을 했습니다. 여러 가문과 정략결혼을 해서 힘을 모으려고 했습니다. 유리는 다물도(비류국) 송양의 딸과 결혼을 하고 주몽(동명왕)이 확장한 비류국(다물.. 2024. 11. 17. 고구려 5부 연맹체 고구려 5부 연맹체고구려는 압록강 유역에서 성장한 5개의 정치체인 '부'가 연합,연맹하는 형태로 건국되었습니다. 5개의 '부'는 계루부, 소노부(비류나부), 절노부(연나부), 순노부(환나부), 관노부(관나부) 입니다. '나','노'는 압록강 중류 지역을 흐르는 하천 변에 만들어진 집단으로 부족이나 소국을 말합니다.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기 전 압록강 중류 지역에는 소노집단이 중심이 되어 여러 지역 집단들을 합쳐놓은 연맹체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강물에 흘러 내려오는 채소를 따라 올라가 송양왕을 만난 것처럼 이 당시 소노집단인 비류부가 중심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몽이 부여에서 남하해 계루집단을 만들고 송양을 이겨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것은 소노집단에서 계루집단으로 연맹체 장이 .. 2024. 11. 12. 고구려주몽의 아들 유리 고구려 건국 10년 그리고 8월, 유화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금와왕은 유화 부인을 태후의 예로써 장례를 지냈고 혼백을 모시는 사당을 세웠다고 전했습니다. 그해 10월, 주몽은 금와왕에게 예물과 함께 사신을 보내 깊은 감사의 뜻을 보냈습니다. 주몽은 임신하고 있던 아내 예씨부인을 떠올렸습니다.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 전해온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궁금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예씨 부인은 훌륭한 성품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예씨 부인은 부여에서 유리를 엄격하게 가르치고 길렀습니다. 유리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라 누구에게도 뒤치지 않는 늠름한 소년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마을에서 가장 활을 잘 쏘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활의 명수를 '주몽'이라 부르는 동부여에서 아무도 유리를 주몽.. 2024. 11. 11. 고구려 수도에 쌓은 성은 무엇이 있나요? 졸본성에 쌓은 오녀산성주몽은 졸본의 평지성인 졸본성을 쌓았고 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그리고 위급할 때 피난하기 위해 졸본성과 연결된 산성인 오녀산성을 만들었습니다.국내성에 쌓은 환도산성고구려 두 번째 왕인 유리왕 때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에 있는 국내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강을 끼고 있는 평지성인 국내성을 쌓았고 위나암산 기슭에는 환도산성인 위나암성을 쌓았습니다.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둘레의 산줄기에 성벽을 쌓은 포곡식 산성이었습니다. 골짜기 안의 넓은 땅을 활용할 수 있었고 골짜기를 흐르는 물과 주변의 평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평양의 대성산성427년 장수왕 때 고구려는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평양에도 산성과 평지성을 같이 쌓았는데 안학궁성(청암리성)과 대성산성이.. 2024. 11. 10. 고구려인에게 성은 어떤 의미일까요? 고구려 사람들은 산성과 평지성을 건축해 2중성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평소에는 평지성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산성으로 올라가 방어를 했습니다. 평지성이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었다면 산성은 전쟁을 대비한 피난과 방어의 공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지성은 교통이 편리한 넓고 평평한 곳에 쌓았고 산성은 길이 험하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에 쌓았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평지보다는 산에 성을 쌓았습니다. 산 중턱이나 골짜기를 둘러쌓는 성은 쌓기는 어렵지만 일단 쌓고 나면 많지 않은 군사로도 쉽게 나라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벽돌을 굽지 않고 돌을 깎아서 쌓아올리는 육합쌓기를 했고 돌의 크기가 매우 컸습니다. 육합쌓기는 하나의 성돌이 반드시 6개의 성돌과 면하게 쌓는 방법입니다. 돌을 켜켜이.. 2024. 11. 10. 이전 1 ··· 4 5 6 7 8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