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이 죽은 해인 서기 9년, 중국에서도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무휼
유리왕은 여섯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 도절과 둘째 아들 해명이 죽자 유리왕은 셋째 아들 무휼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무휼은 어릴 때부터 영리하기로 소문이 나서 신동이라 불리었습니다. 무휼이 6살 때, 부여 왕 대소가 보낸 사신이 유리왕에게 부여를 섬기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나라에는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있고, 사람에게는 아이와 어른이 있듯이 아이가 어른을 섬기는 것처럼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민을 한 유리왕은 대소 왕에게 명령에 따르겠다고 말하며 사신을 보냈습니다. 항복 선언이었습니다. 무휼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직접 부여 사신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부여 사신에게 부여 대소 왕은 왜 죄 없는 고구려를 꾸짖는지 물었습니다. 부여 사신은 어린아이의 말에 기가 막혔습니다. 무휼은 부여 사신에게 여기에 알을 쌓아 놓았으니 대소 왕이 이 알들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신하와 장수의 예의로 섬길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섬기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부여 사신은 대소 왕에게 무휼의 말을 전했습니다. 대소 왕은 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이 말 뜻을 물어보다가 한 노인이 풀이를 해 주었습니다. 알을 쌓아 놓은 사람은 위태로울 것이고 쌓아 놓은 알을 무너뜨리지 않는 사람은 안전할 것입니다. 즉 왕이 이룬 일들은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과 같은데 이를 돌보지 않고 고구려를 건드리는 것은 알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여 대소 왕은 씁쓸하게 웃으며 건방지고 무서운 놈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무휼이 10살 되던 해에 부여가 또다시 고구려를 공격했습니다. 무휼도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꾀를 하나 내었습니다. 부여 군사들이 고구려 군사들을 얕잡아 보고 있으니 도망치는 척하면 부여 군사들이 쫓아올 거라고 말하며 깊은 골짜기로 끌어들여 공격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고구려 군사들은 무휼의 말을 그대로 따랐고 부여 군사를 물리쳤습니다. 무휼이 11세가 되자 유리왕은 태자로 삼았고 나랏일을 살피게 했습니다. 유리왕은 재위 37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15세의 나이에 무휼은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고구려 3대 왕인 대무신왕입니다.
고구려 3대 대무신왕
대무신왕이 왕위에 오를 무렵 중국에는 외척이란 신분으로 한나라를 좌지우지하던 왕망이 황제를 없애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신나라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나라 안에서 반란이 일어나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부여는 고구려를 정복하고 신나라를 정복해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다시 고구려를 무너뜨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부여 대소왕은 고구려에 이상한 까마귀 한 마리를 보냈습니다. 몸통이 두 개고 머리가 하나 그리고 붉은색인 까마귀였습니다. 부여 사신은 붉은 까마귀를 보여 주며 까마귀는 원래 검은색이어야 하는데 붉고 머리가 하나인데 몸은 두 개인 걸 보니 두 나라가 합쳐질 징조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무신왕은 고구려를 점령하겠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대무신왕은 태연한 얼굴로 웃으면서 아주 귀한 까마귀라고 말하며 검은색은 북쪽의 색이고 붉은색은 남쪽의 색인데 검은색이 붉게 변했으니 북쪽이 남쪽에 합쳐진다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여 사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부여로 돌아가 대소 왕에게 말을 전했습니다. 대무신왕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 부여는 전쟁을 선언한 것이라고 말하며 먼저 부여를 공격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대무신왕은 부여 왕이 붉은 까마귀를 전해 준 다음 해에 수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부여를 공격했습니다. 대소 왕은 감히 고구려가 부여를 먼저 공격을 한다고 화를 내면서 직접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대무신왕은 군사들을 이끌고 부여 남쪽에 있는 넓은 개펄에 도착했습니다. 개펄 주변에는 강이 흐르고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습니다. 이 풍경을 지켜본 대무신왕은 군사들에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대무신왕은 부여 군사들을 개펄로 끌어들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장수 괴유에게 숨어 있다가 부여 군사들이 개펄에 빠지면 재빨리 나와 공격하라고 말했습니다. 부여 군사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개펄에 빠져 쓰러져 달릴 수가 없었습니다. 고구려 장수 괴유는 대소 왕에게 달려가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대무신왕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모욕하고 고구려를 업신여긴 대소의 죽음에 기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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