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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2

유리왕 둘째 아들 해명과 두번째 도읍 국내성 유리왕은 3년 10월 졸본에서 국내성의 위나암으로 고구려의 도읍을 옮겼습니다.해명유리왕의 둘째 아들로 16세의 나이로 태자에 책봉되었습니다. 유리왕은 둘째 아들 해명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자신은 위나암에 궁궐을 짓고 편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1년 동안의 준비였습니다. 유리왕이 도읍지에 쌓은 성은 국내성이었습니다. 국내성 옆으로 흐르는 통구하가 압록강으로 흘러 산골인 졸본보다 교통이 편리하고 땅도 훨씬 넓었습니다. 유리왕은 국내성에는 왕을 거스르는 자가 없어 좋다고 말하며 사냥을 하며 나랏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신하들은 도읍을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랏일을 더욱 힘써 돌보고 백성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냥이나 하고 다닐 때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쓴소리를 한 신하는 주몽(동명왕)과.. 2024. 11. 17.
고구려 수도에 쌓은 성은 무엇이 있나요? 졸본성에 쌓은 오녀산성주몽은 졸본의 평지성인 졸본성을 쌓았고 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그리고 위급할 때 피난하기 위해 졸본성과 연결된 산성인 오녀산성을 만들었습니다.국내성에 쌓은 환도산성고구려 두 번째 왕인 유리왕 때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에 있는 국내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강을 끼고 있는 평지성인 국내성을 쌓았고 위나암산 기슭에는 환도산성인 위나암성을 쌓았습니다.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둘레의 산줄기에 성벽을 쌓은 포곡식 산성이었습니다. 골짜기 안의 넓은 땅을 활용할 수 있었고 골짜기를 흐르는 물과 주변의 평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평양의 대성산성427년 장수왕 때 고구려는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평양에도 산성과 평지성을 같이 쌓았는데 안학궁성(청암리성)과 대성산성이.. 2024.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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