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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by 인포쌤1 2024.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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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은 왜 졸본에 고구려를 세운걸까?

 

늠름하고 무예와 지략이 빛을 더하며 스무 살이 된 주몽은 용모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예 씨와 혼례식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부여의 대소 왕자를 포함한 일곱 왕자가 주몽을 죽이려고 하는 계획을 눈치챈 어머니 유화는 주몽이 부여를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결국 주몽은 어머니와 아이를 밴 아내를 두고 부여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신채호의 <조선 상고사>를 보면 “대소 왕자가 그를 더욱 시기하여, 살해하려는 음모가 더 심해졌다. 주몽이 이를 알아차리고는 예 씨를 아내로 맞이하여 밖으로는 아내에게 빠져서 다른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고 속으로는 오이, 마리, 협보와 공모하여 어머니 유화에게 고별하고 처를 버리고 도망하여 졸본 천에 이르니, 이때 주몽의 나이 22세였다.”라고 쓰여있습니다. 주몽은 아내에게 아이가 태어나면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 일곱 모가 난 돌 위에 서 있는 소나무 밑에 숨겨 둔 물건을 가지고 나에게 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강을 건너 간신히 부여를 탈출한 주몽과 친구들은 밤늦게 한 골짜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골짜기가 지금의 만주 환인 현의 졸본이었습니다. 이곳에는 많은 세력이 오래전부터 부족 국가를 이루며 살고 있었습니다. 주몽은 그 세력들과 손을 잡고 새 나라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졸본천은 북부여에서 남하한 주몽이 처음 나라를 세운 곳입니다. 그곳은 땅이 기름지고 산과 강이 잘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현재 남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합류하는 혼강(비류수)의 중류지역이며 지도를 보면 중국의 라오닝성 환인 일대입니다.

소서노

주몽이 졸본천에서 만난 여인은 이 지역 세력가의 딸인 소서노였습니다. 소서노는 주몽을 만나기 전에 우태라는 남자와 결혼해 비류, 온조를 낳은 과부였습니다. 비류, 온조가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몽이 소서노의 도움으로 고구려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비류, 온조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음을 보면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부여를 탈출한 주몽은 졸본에 도착했고 연타발을 만났습니다. 그는 주몽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둘째 딸 소서노와 결혼시켰습니다. 

소서노는 졸본의 기득 세력을 설득해 주몽의 신하가 되도록 했으며 부여를 도망쳐 나온 주몽에게 황금 같은 기회를 마련해 준 여인이었습니다. 주몽은 졸본 또는 환인이라고 부르는 지역의 깊은 계곡에 도읍을 정하고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주몽은 소서노를 고구려 초대 왕후로 삼고 비류, 온조도 친자식처럼 대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주몽이 왕위를 비류, 온조에게 물려주기로 소서노와 약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몽과 소서노의 결혼은 단순히 개인 간의 결합이 아닌 두 정치세력의 연합을 상징했습니다. 소서노는 고구려 건국 초기에 필요한 재정적, 군사적 기반을 제공했고 경제적 기반을 확립하는 데에도 그녀의 재산을 기꺼이 사용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둘의 결혼으로 졸본 세력과 고구려 간의 갈등을 해소하면서 초기 통합과 안정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구려 나라 이름 어떻게 지어졌나요?

<삼국사기>를 보면 주몽은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정했고 이로 인해 고(高)를 성씨로 삼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높은 씨족, 즉 하늘 님의 자손이란 뜻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졸본을 도읍으로 정하고 자신을 왕으로 선포했습니다. ‘고’는 ‘높을 고’ 그리고 ‘구려’는 고대 언어에서 ‘위대하다’, ‘성스럽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주몽이 강건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위대하고 신성한 나라’, ‘높고 큰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 나라였습니다. ‘구려’를 고구려 옛말인 ‘성’으로 해석하여 고구려 나라 이름을 ‘높은 성’이라고 말하는 이론도 있습니다. 압록강 중류의 예맥족(고대 만주지역에 거주한 한국의 종족 명칭을 가리키는 역사용어)들은 고구려를 중심으로 힘을 모았고 고조선 옛 땅에 있던 중국 세력을 밀어내자 중국인들은 예맥 사람들을 ‘구루’나 ‘구려 사람’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고구려 첫 번째 도읍 졸본에 쌓은 오녀산성

졸본의 땅 한 귀퉁이에 정착하며 평지 성인 졸본성을 쌓고 새 나라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위급할 때 피난하기 위해 졸본 성과 연결된 산성을 쌓았는데 그것이 오녀산성으로 불리는 흘승골성입니다. 오녀산 정상은 깎아지른 절벽이 둘러싸고 있는 천연의 요새로 성벽을 조금만 덧쌓아도 완벽한 방어시설이 되었습니다. 오녀산성을 쳐다보면 정말 하늘에서 신령스러운 손길이 내려와 산의 정상부를 평평하게 다듬고 산기슭을 수직으로 깎아내려 준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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