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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구려 수도에 쌓은 성은 무엇이 있나요?

by 인포쌤1 2024.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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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본성에 쌓은 오녀산성

주몽은 졸본의 평지성인 졸본성을 쌓았고 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그리고 위급할 때 피난하기 위해 졸본성과 연결된 산성인 오녀산성을 만들었습니다.

국내성에 쌓은 환도산성

고구려 두 번째 왕인 유리왕 때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에 있는 국내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강을 끼고 있는 평지성인 국내성을 쌓았고 위나암산 기슭에는 환도산성인 위나암성을 쌓았습니다.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둘레의 산줄기에 성벽을 쌓은 포곡식 산성이었습니다. 골짜기 안의 넓은 땅을 활용할 수 있었고 골짜기를 흐르는 물과 주변의 평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평양의 대성산성

427년 장수왕 때 고구려는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평양에도 산성과 평지성을 같이 쌓았는데 안학궁성(청암리성)과 대성산성이었습니다. 안학궁은 현재 터만 남아있습니다. 안학국의 남쪽에는 대동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대성산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대성산성은 포곡식 산성으로 성벽의 길이는 9284미터이고 성 안에는 넓은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식량창고를 비롯해서 무기고, 병영 등이 있었고 크고 작은 연못과 저수지도 170군데 이상 만들어졌습니다.

평양성

수도 평양의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도시의 규모도 점차 커지자 고구려는 552년 평양에 산성과 평지성의 기능을 겸하는 대규모 도성인 평양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평양성은 왕궁과 산성이 그리고 백성들까지 모두 하나의 성 안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입니다. 이렇게 왕궁과 산성이 동시에 있는 평양성은 고려 시대를 지나 조선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고 합니다. 평양성은 대동강과 보통강을 자연 해자(성 주위의 물웅덩이)로 삼고 모란봉과 주변의 가파른 암벽을 북쪽 방어벽으로 이용했습니다. 산성의 성격을 가진 북성과 내성, 그리고 평지성의 성격인 중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성에는 왕이 기거하는 궁궐을 중성에는 관청 그리고 외성에는 귀족과 장인들을 위한 시가지를 만들었습니다.

고구려는 도성이 있는 곳을 제외하면 대체로 산성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주변의 여러 세력과 대결해야 했기 때문에 방어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산성을 쌓기 위한 장소 그리고 쌓는 모양은 백성들이 피난해서 장기간 살아갈 수 있는지 군대의 지휘와 방어가 손쉬운지를 살피면서 결정했습니다.

  지도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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