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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구려 폭정 왕 누구?

by 인포쌤1 2025.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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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정을 했던 왕

고구려에서 폭정을 했던 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폭정을 한 고구려 왕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5대 왕 모본왕, 고구려 7대 차대왕, 그리고 고구려 14대 봉상왕입니다.

 

5대 모본왕

5대 모본왕의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모본왕은 두로라는 신하에게 살해되는데, 아래 표를 보듯 고 씨인 태조왕 계열이 두로를 이용해 해 씨를 제거하고 왕권을 가져간 사건으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왕호 왕 이름 왕 성씨
1대 동명왕 고주몽
2대 유리왕 유리
3대 대무신왕 무휼
4대 민중왕 해색주
5대 모본왕 해우
6대 태조왕

 7대 차대왕

 
 

차대왕

자료출처: 참환역사신문

태조왕 동생 수성

차대왕은 고구려 6대 태조왕의 동생 수성입니다. 태조왕의 아버지 재사는 여러 명의 아내와 결혼해 태조왕에게는 동생이 많았습니다. 태조왕은 자신보다 24살이나 어린 동생인 수성을 가장 아꼈습니다. 수성은 태조왕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수성은 후한을 2,000명의 군사를 이용해 유주 자사 풍환, 현도 태수 요광, 요동 태수 채풍을 따돌리며 고구려의 3000명의 군사가 요동과 현도를 공격할 수 있게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부여군이 후한을 돕지 않았다면 이때 고구려는 현도성도 정복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때 수성의 나이 50세였습니다. 태조왕은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을 하는 동생 수성을 보며 자신은 많이 늙어 이제 물러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수성에게 나랏일을 하게 했습니다.

수성은 혼자서 마음대로

하지만 수성은 혼자서 마음대로 나랏일을 하려고 해 태조왕은 고구려 최고 벼슬인 좌보, 우보를 목도루와 고복장에게 하라고 했습니다. 수성이 제멋대로 하는 걸 막아달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수성은 현도성을 정복하지 못했고 자신의 나이는 늘어나고 형인 태조왕은 왕위에서 물러나지 않아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렇게 수성이 나랏일을 10년쯤 하던 때에 신하들은 태조왕은 늙었는데도 왕위를 넘겨줄 마음이 없는 것 같으니 수성은 대책을 세워야 하는게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수성은 ‘태조왕의 맏아들 막근이 있는데 내가 어찌 다음 왕이 될 수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수성의 왕위 욕심을 부채질한 신하들 때문에 수성은 자신이 왕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왕의 자리를 탐내기 시작했습니다.

수성이 왕의 자리를 탐내자, 좌보로 있던 목도루는 병을 핑계 삼아 벼슬을 내려놓았습니다. 수성과 함께 나랏일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수성의 동생 백고 또한 위험한 마음을 품지 말고 충성과 의리를 가지고 욕심을 눌러 달라고 말했습니다. 수성은 동생 백고에게 화를 내며 ‘사람은 누구나 더 높은 자리에 올라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어 한다’라고 이야기하며 왕위를 차지할 욕심을 보였습니다.

태조왕의 꿈

어느 날 태조왕은 표범 한 마리가 호랑이의 꼬리를 물었다는 꿈 이야기를 점치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호랑이는 왕이고 표범은 왕족이니 왕족 가운데 하나가 왕위를 노리는 것을 알려주는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태종은 신하들을 불러 꿈 이야기를 해주고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고복장은 태조왕을 위로하며 태조왕의 덕이 높아 꿈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성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 큰일을 준비하라고 말하며 반대하는 자는 목을 베라고 명령했습니다. 고복장은 태조왕에게 달려가 반란을 일으키는 수성을 처형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태조왕은 100세의 나이가 되었고 숨쉬기도 힘들다며 수성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고복장은 수성은 잔인하고 어질지 못한 자이고 만약 그가 왕이 된다면 태조왕의 자식들 또한 위험해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어질지 못한 아우에게 은혜를 베풀면 죄 없는 자손들은 죽게 될 거라고 말하며 수성이 왕이 되는 것을 막아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태조왕은 수성을 불러 왕위에 오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태조왕은 별궁으로 옮겨가 조용히 지낸다고 말하며 100세가 훨씬 넘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차대왕(수성) 왕위에 오르다

차대왕(수성)은 왕위에 오르자 자신을 따르던 신하들의 벼슬과 계급을 올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보로 있던 고복장을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고복장은 이 시대에 사느지 죽는 편이 낫다고 말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복장의 죽음을 시작으로 차대왕(수성)은 태조왕 시절의 신하들을 모두 쫓아내며 차대왕(수성)의 독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차대왕(수성)은 신하들을 불러 태조왕의 첫째 아들 막근 태자가 있어 걱정이라며 막근에게 칼잡이를 보내 죽게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막근의 동생 막덕은 비참하게 죽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낫다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조카인 왕자들까지 직접 죽이거나 죽게 한 차대왕(수성)은 날이 갈수록 더 포악해졌습니다.

차대왕(수성)이 사냥을 나가 즐기고 있는데 하얀 여우 한마리가 나타나 차대왕(수성)의 뒤를 쫓아오며 계속 울부짖는 일이 있었습니다. 차대왕(수성)은 활을 쏘았지만 맞히지 못했고 옆에 신하에게 여우가 우는 것은 무슨 징조냐고 물었습니다. 신하는 여우는 불길한 짐승이라고 말하며 색도 하애서 더욱 이상하다고 말했습니다. 왕이 스스로 두려워 할줄 알아야 하고 반성할 줄 알며 스스로 새롭게 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말하며 덕을 쌓으면 불길한 징조도 복된 징조로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덕을 길러 좋은 정치를 하라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차대왕(수성)은 화를 내며 신하를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주변 신하들은 차대왕(수성)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기 시작했습니다. 날로 더욱 포악해지는 차대왕(수성)을 더이상 볼 수 없었던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명림답부였습니다. 백성들은 굶주리고 아첨하는 무리들만 왕 주변에 가득하니 왕을 죽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명림답부는 차대왕(수성)에 대해 사람들의 분노가 크다는 것을 확인하고 군사들을 동원해 차대왕(수성)을 죽였습니다. 폭정을 했던 차대왕(수성)의 시대는 가고 연나부 집단의 명림답부가 고구려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14대 봉상왕

서천왕의 맏아들인 봉상왕이 왕위에 오를 때 고구려에는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영웅이 있었습니다. 서천왕의 동생이자 봉상왕의 삼촌 달가 장군이었습니다. 봉상왕은 자신보다 달가 삼촌을 백성들이 더 좋아해 늘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봉상왕이 왕이 되자 달가 장군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동생 돌고에 누명을 씌여 스스로 죽게 했습니다.

298년 9월 추수를 해야 하는 때에 서리와 우박이 내려 백성들의 농사가 망해 굶주리는 백성들이 늘어났습니다. 이때 봉상왕은 백성들을 살피지 않고 궁궐을 더 크게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백성들을 강제로 공사에 동원하며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했습니다.

봉상왕은 늘 누군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지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래서 돌고의 아들이 반란을 꾀할지 모른다며 을불(봉상왕의 동생 돌고의 아들)을 잡으라고도 명령했습니다.

299년 12월에는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집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죽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5개월 동안 비도 내리지 않아 가뭄도 심했습니다.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는 일까지 있다고 하니 고구려 백성들은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고향을 떠났습니다.

국상 창조리는 봉상왕에게 백성들의 힘듦을 이야기했지만, 봉상왕의 횡포는 계속되었고 백성들의 고통도 커졌습니다. 그래서 창조리는 신하들과 반란을 일으켜 봉상왕을 쫓아냈습니다. 왕위에서 쫓겨난 봉상왕은 비참한 신세가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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