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왕(해색주)
후한이 낙랑을 빼앗을 무렵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 왕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무신왕은 충격을 받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대무신왕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병에 걸려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호동을 모함했던 왕비의 아들 해우의 왕 자리를 넘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대무신왕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이을 아들은 해우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우는 너무 어린 나이여서 대무신왕의 동생 해색주가 왕이 되었습니다. 해색주는 고구려 4대 왕인 민중왕이 되었습니다. 민중왕(해색주)은 왕위에 올랐지만 조카 해우를 대신해서 왕에 올라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사람들은 해우가 크면 분명 왕의 자리를 물러나야 한다고 말할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민중왕(해색주)는 해우를 죽이고 싶어 했지만 고구려에 홍수가 크게 나고 백성들이 굶주리고 떠돌아다녀 민중왕(해색주)는 백성들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나라의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 주게 하였습니다. 또한 겨울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민중왕(해색주)은 자연재해에 대응하며 백성들을 보호했습니다. 하지만 잠우락부 대승(고구려 족장)은 1만여 호를 거느리고 후한에 투항했습니다. 한나라로 간 백성들은 원래 낙랑 가까이에 살면서 한나라와 가깝게 지냈고 고구려의 사정이 좋지 않자 한나라로 가버린 것입니다. 민중왕(해색주)은 생전에 자신의 장례도 계획했습니다. 사냥을 하던 중 민중원에서 석굴을 발견한 후 이곳이 자신의 무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삼국사기>에는 왕후와 여러 신하들이 임금의 유언을 어기기 어려워 석굴에 장사 지내고라고 적혀 있습니다. 민중왕(해색주)는 왕이 된 지 4년 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모본왕(해우)
민중왕(해색주)는 어려움만 겪으며 세상을 일찍 떠났지만 어린 태자 해우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고구려가 홍수나 가뭄을 겪지 않았다면 민중왕(해색주)는 강한 권력을 해우에게 휘둘렀을지도 모릅니다. 해우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우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고구려 5대 왕인 모본왕이 되었습니다. 모본왕(해우)는 영토를 넓히는 일에 힘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모본왕(해우)는 후한의 도읍인 장안 근처까지 계속 고구려 군대를 보내며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후한의 황제는 고구려의 기세에 놀라 사신을 고구려에 보냈습니다. 백성들을 돌보야 하니 전쟁을 그만하고 평화롭게 지내자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본왕(해우)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을 지배하는 후한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본왕(해우)는 후한의 황제의 뜻을 받아 한동안 평화가 유지되었습니다.
전쟁은 없고 평화가 유지되었지만 고구려에는 몇 년에 걸쳐 자연재해가 있었습니다. 홍수가 나서 산들이 무너지고 서리와 우박이 심해 백성들의 농사는 망해 백성들이 굶어 죽게 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모본왕(해우)는 나라의 곡식 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몇 년 동안의 자연재해가 계속되자 모본왕은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생기며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가 불안해서 백성들이 언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의심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바로 죽여버렸습니다. <삼국사기>에는
모본 4년, 왕이 날이 갈수록 포악해져
앉을 때는 사람을 깔고 앉으며, 누울 때는 사람을 베고 누웠다.
만일 사람이 조금만 움직이면 가차 없이 죽였으며, 신하 가운데에서
바른 소리를 하는 자가 있으면 그에게 활을 쏘아 댔다.
모본왕(해우)이 점점 포악해지자 신하들의 두려움도 커져갔습니다. 신하 가운데 두로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늘 언제 죽을지 몰라 두려워했습니다. 두로는 모본왕(해우)이 아끼는 신하였습니다. 하지만 모본왕(해우)는 아끼는 신하여도 눈에 거슬리면 바로 죽여 버리기 때문에 두로는 늘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눈물까지 흘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울고 있는 두로에게 누군가 다가와 사나이 대장부가 울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면 원수고 나를 사랑하면 임금이라고 말했습니다. 왕이 포악해져 사람을 죽이니 이것은 백성의 원수라고 이야기 하면서 두려움에 떨지 말고 백성의 원수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두로는 죄가 없는 자신이 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왕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두로는 칼을 갖고 왕에게 갔습니다. 모본왕(해우)는 두로가 왔냐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오라고 말했습니다. 두로는 왕에게 가까이 가서 가지고 있던 칼을 꺼내 모본왕을 죽였습니다. 백성들과 신하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던 모본왕은 비참하게 신하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왕이 신하에 의해 살해되었음에도 나라는 크게 혼란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신하들 대부분은 모본왕(해우)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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